그리움을 위하여
그리움을 위하여
  • 육복수/시인
  • 승인 2007.11.20 10: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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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주머니에 넣고 있거나 손에 들고 다니면서 버리지도 어쩌지도 못하고 마음 불편해 하는 것이 휴대폰이다.

이것이 없으면 무슨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이나 되는 것처럼 소중하게 다루다가도, 밤이고 낮이고 가릴 것 없이 불쑥불쑥 울려대는 벨소리에는 필시, 내가 세상이 쳐놓은 거대한 그물망에 걸려있는 듯한 묘한 불쾌감이 일어난다.

편리한 것으로 따진다면 말이 필요 없겠다. 산 속이고 바닷가고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대화를 할 수 있고, 요즘은 카메라와 텔레비전까지 볼 수 있으니 참으로 손 안에 있는 만능의 요술기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보니 가끔 집에다가 휴대폰을 놓고 나오는 날은, 손이 허전하고 뭔가가 불안하고 영판 마음이 안정스럽지가 못하기까지 할 때도 있다.

사람살이가 소통의 연속에 있다고는 하나, 내 손 안에 든 기계덩이 하나로 인해 이렇듯 마음이 편치조차 않을 지경이면 분명 문제는 있다.

기계의 힘을 빌린 소통으로 인간의 관계가 속도 있게 진행되어진다는 것도 좋은 면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외연의 원활한 소통만큼이나 스스로에 대한 내면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냐는 것이 문제다.

보고 싶은 것은 곧장 봐야하고, 듣고 싶은 것은 곧장 들어야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바로 먹어야하는 이 속도감에 취해서, 대상에 대한 궁금증이나 그리움이 쌓일 마음의 여지가 좁아져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움이 뭐겠는가, 외연의 단절로 인해서 오는 대상에 대한 내면의 소통이 아니겠는가.

배가 고파서야 음식이 맛이 있듯이, 듣고 싶은 목소리 덜 듣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씩 쌓여질 때, 사랑이라는 것이 오지 않을까.

휴대폰으로부터 조금은 놓여나지 않을까 싶다.

흐린 어느 날 그가 왔다. 내 오랜 벗, 고무신 찌직찌직 끌고 환하게 웃으면서, 먹빛 옷과 배경의 오솔길과 하늘색이 참하게 어울리던, 무소식 오 년의 웬수.

곡차대취.

압력밥솥 열기

쉬쉬 소리가 나고

달각달각 소리가 멈추고

김이 다 빠지고 나면

고 위에 있는 빨간 걸

앞으로 밀고 옆으로 돌리면

된다는데

나는 그게 무서운 거라

뚜껑이 튀어서 이마를 치거나

천정을 뚫거나 하는 것도 무섭지만

그럴 것이다라는 머리 속의 상상이 더 두려운 거라

그래서 나는 압력밥솥 뚜껑을 열 때

쉬쉬고 달각달각이고 김빠지는 소리고

그런 거 하고는 상관없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간에

아무 소리가 안날 때,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될 때

그 때,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