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져야 할 기관
없어져야 할 기관
  • 백제뉴스
  • 승인 2011.07.0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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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발달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예전에는 없었던 기관이나 조직, 새로운 발명품들이 편리함을 위해 마구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것들을 가만히 뜯어보면 우리에게 편리함은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 없어도 될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원시사회의 경우는 고작 도구라고 하는 것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불과했고, 사회구조도 국가라는 개념이 없었다.

국가가 없으니 당연히 국가를 운영하는 행정기관도 없었다. 국가가 없으니 당연히 입법기관인 국회도 없었고, 정당도 없었다. 그러니 세금도 없었다. 또한 과학도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많은 유익한 발명품들을 쏟아내지만 그 발명품 중에 어떤 것은 편리함과 함께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되기도 했다. 자동차라는 것만 보더라도 장거리를 빠른 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지만 반면에 자동차사고로 인해 인간이 생명을 잃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반대로 없어지는 것들도 많이 있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고대사회를 지탱하던 신분제도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권존중 사상에 의해 없어져 버렸다. 마찬가지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도구들은 도태되고 새로운 것들이 발명되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했다. 고대사회는 유일한 이동수단이 되었던 우마차는 자동차로 바뀌게 되었으며, 사람의 손으로 하던 많은 일들은 기계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렇게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회도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변화를 거듭해 왔다. 이런 변화 속에서 어떤 것은 긴 시간을 통해 없어지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오랜 기간을 거치지 않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도 많이 있다.

그 중의 하나인 것이 삐삐와 핸드폰 사이에 잠시 있다가 사라진 시티폰이라는 것이다. 시티폰은 기지국에서 몇 미터 반경에서만 통화가 가능한데 전화를 받는 기능은 없고 거는 기능만 있는 것으로 기지국이 대부분 공중전화부스에 설치되어 있어 공중전화부스에만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삐삐와 핸드폰 사이에서 잠시 존재하다가 금방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떤 것은 현재 없어지고 있는 중에 있는 것들도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공중전화부스일 것이다.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버스 승강장이나 공공장소에는 공중전화부스가 참 많이도 있었다. 그런데 핸드폰 보급이 일반화되면서 대부분 핸드폰을 가지고 있기에 거리에는 공중전화부스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주 가끔은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되어 공중전화를 하려고 공중전화부스를 찾으면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과학의 발전은 많은 것을 없어지게도 하고 새롭게 탄생시키기도 하면서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할 수는 없지만 사회구조까지도 변하게 만든다. 가령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대량생산체제가 되면서 공장노동자들이 필요하게 되자 신분제 사회가 무너진 것이다. 반면 사회에서 꼭 필요하지도 않으면서도 발전하는 것들도 있다.

우리 벧엘의집과 같은 사회복지 기관들일 것이다. 민간 사회복지 기관들은 국가가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잘 하고, 사회가 장애인이나 독거노인, 빈곤아동 등 주위의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된다면 벧엘의집과 같은 기관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벧엘의집과 같은 기관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더 발전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얼마 전 벧엘의집이 협소한 공간 때문에 고생하다가 넓은 공간을 마련하여 이사를 했다. 즉 확장 이전을 한 것이다. 그 중에도 무료진료소인 희망진료센타의 경우는 예전의 공간에 비교하면 이제는 소규모 로컬 병원의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물리치료실, 진료실, 치과진료실, 약국 등 서로 독립된 공간으로 입원실을 갖추지 않았을 뿐 입원도 가능한 수준이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초음파기, 심전도기, 고주파치료기, 고온멸균기 등 장비면에서도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처음 희망진료센타를 시작할 때 한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빨리 없어지는 기관이 되도록 하자며 희망진료센타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을 하자고 했었다. 희망진료센타를 찾는 사람들은 돈이 없어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지금은 이곳에서 치료를 받지만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는 무상의료가 실현된다면 우리 같은 기관은 없어도 되는 기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희망진료센타가 해를 거듭할수록 의료장비도 늘어나고 공간도 넓어지고 약품의 종류도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없어져야 할 기관, 그러기에 처음부터 이런 기관이 없어도 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했지만 그것은 헛구호가 되었고 점점 시간이 흘러가면서 규모는 커가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규모가 커간다는 것은 그만큼 희망진료센타가 필요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 많다는 반증이기에 스스로 위안을 삼아보지만 여전히 없어져야 할 기관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없애기에는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어 필요한대로 키워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희망진료센타가 없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다. 그러기에 자연적으로 없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없애기 위해 노력하여 이런 기관이 없어도 아무 걱정 없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도 희망진료센타를 없애는 운동을 한다고 하면서 규모를 키워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역설적으로 규모가 커가는 것은 없어지기 위한 노력이길 기대해본다.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