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을 때리고 울려야 교육이다
학생을 때리고 울려야 교육이다
  • 이달우 공주대 교수
  • 승인 2007.10.3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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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 나만큼 많이 매를 맞고 큰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던히도 많이 맞았다. 기네스북에 등재되고도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어려서 그토록 매를 많이 맞은 것은 워낙 철딱서니가 없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어른들께서 당신의 손자를 자식을 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던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에게 회초리를 들었던 분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큰 형님까지 딱 세 분이시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셔서 지금은 안 계시고, 아버지는 이제는 많이 편찮으셔서 누워 계시기만 한다. 큰 형님은 늘 못난 동생에게 큰 그늘을 만들어 주셨는데, 근자에 병환으로 대수술을 받으시고 정양중이시다. 형님이 다시 전처럼 정력적으로 일을 하시게 되기를 고대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은 세 분을 생각하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솟곤 한다. 나는 이날 이때까지 그 분들을 원망한 적이 없다. 원망이 다 무엇인가! 아직도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형님의 가르침이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늘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다 그 분들의 회초리 덕분에 철이 든 것인지 모른다. 어른들의 회초리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지금의 나를 가능하게 한 보약이요 자양분이었다. 할아버지의 지조와 아버지의 역량 그리고 형님의 학문에 비하면 그야말로 홍로점설(紅爐點雪)도 못되겠지만, 그래도 내가 오늘날 대학교수가 되어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된 것은 모두가 다 그 분들의 매질에 힘입은 것이다.
 
흔히 체벌(體罰)에 대해 좋다 나쁘다 논의가 분분하다. 하지만 나는 체벌에 대한 호오(好惡)간의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체벌이라는 용어부터 탐탁하지 않다. 그나저나 체벌에 대한 세세한 논의는 접어둔다. 다만, 한 가지 꼭 짚고 넘어 갈 것이 있다. 체벌은 어떤 경우이든 반드시 교육적 의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적이지 않은 체벌은 우악스러운 폭력에 불과하다.
 
교육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그 중에 하나 유력한 것이 교육을 각성(覺醒)으로 보는 것이다. 각성의 의미는 아테네 사회와 시민들을 졸고 있는 말에 비유하고, 자신은 그 말이 졸지 않도록 깨우치는 등에(gadfly)의 역할을 자처했던 소크라테스가 생각했던 바로 그 의미와 같다고 본다.
 
 누구든 잘못한 일이 있으면 마땅히 매를 맞아야 하고, 또 어른들은 매를 들어야 한다. 이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잘한 일이 있으면 칭찬을 받아야 하고, 또 당연히 상을 주어야 한다. 이것도 자명한 이치이다. 꾸지람이나 칭찬이나 다 각성의 작용을 한다. 따라서 꾸지람을 통한 각성이든 칭찬을 통한 각성이든 학습자를 혼돈과 미망의 세계로부터 질서와 지혜의 세계로 이끈다는 점에서는 다 같이 교육적 의미를 지닌다. 다만 교육자의 소신과 철학에 따라 접근방법론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교육계를 보면 꾸지람이나 매질은 야만적이고 역효과를 유발할 수 있으며, 칭찬은 효과적이고 인도주의적이라는 피상적인 인식에 경도되어 있는 것 같다.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나 거의 ‘칭찬 노이로제’ 수준이 아닌가 한다. 야단을 치든 칭찬을 하든 사실에 맞게 하면 될 뿐이다. 교육자의 초심(初心)이 교육적 고려에 근거하고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회초리를 드는 것을 두려워하여 잘못을 보고도 그냥 넘어가게 되면, 학생들이 방자해질 수 밖에 없다. 칭찬이 쉽다고 하여 조금만 잘해도 칭찬을 남발하게 되면, 학생들이 오히려 칭찬불감증에 걸릴 수도 있다. 이런 우를 더 이상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언젠가 산사(山寺)에 들러 종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교육이란 것도 어쩌면 종(鐘)을 치는 일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보통 때 종은 미동도 없이 그대로 있지만, 그 안에는 소리를 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종소리가 필요할 때 타종봉(打鐘棒)으로 종을 치게 되면 비로소 긴 잠에서 깨어 각성음(覺醒音)을 내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게 된다.
 
산 아래 마을에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저녁 무렵 종루에 올라 숙연한 자태로 종을 치던 타종자의 모습과 종소리가 지금도 내 가슴을 울린다. 나도 저런 마음과 자세로 학생을 만나 그들의 내면세계를 일깨워 세상에 아름다운 소리를 울리게 할 수 있을까? 지금도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이달우(공주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