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금강트래킹, 여울에 살을 맞대다
6월 금강트래킹, 여울에 살을 맞대다
  • 박은영 대전충남녹색연합 시민참여국장
  • 승인 2011.06.2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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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바라보면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 언젠가, 엄마의 뱃속에서 나를 감싸던 따뜻하고 평온한 물의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지는 기분이 든다. 매월 사람들의 발길을 강으로 이끄는 것은 오는 이들 모두가 ‘엄마 품’에서 난 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잔잔하고 모든 것을 품어줄 듯 깊은 금강의 모습에서 그 품을 느낀다.

풀 숨소리가 가득한 내도리에 들다

작은 고추밭을 지나 본격적인 산길에 접어드니 초여름의 기운을 한껏 머금은 풀잎들의 숨소리가 가득하다. 우거진 풀과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지나가는 이들의 땀을 식혀준다. 가시박힌 풀들이 옷을 잡아당긴다. 다른 이들의 가는 길 조심하라고 발로 밟으며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곳의 주인을 한 번 오가는 손님들이 제 몸 상하지 않으려고 밟는 것이 미안하고 미안한 일이다.

 내도리는 무주군에 속한 육지의 섬이다. 굽이치는 강이 섬을 만들었다. 이중섭 택리지에 보면 금강 상류에는 강이 만든 섬이 죽도, 내도, 외도 이렇게 세 개가 있다고 한다. 그 중 내도리와 외도리는 소설가 박범신 씨가 무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임하던 시절 문학적 영감을 주는 곳으로도 언급했다고 한다.
 
최수경 대표님 설명에 의하면 섬마을이지만 2001년도 이전까지 다리가 없어 마을 주민들이 놓은 바위다리나 나무다리가 유일했고 이런 환경 때문에 이곳에서 학교 다니던 아이들이 죽은 일화가 있다고 한다. 6월 이맘때, 그 당시에는 장마철이었다. 학교에서 비가 많이 오니 얼른 집에 가라고 해서 하교하는 길, 집에 가기 위해서는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다.

비가 워낙 많이 왔고, 금강 상류 감입곡류하천이라 한꺼번에 많은 물이 멍석물처럼 돌돌돌 말려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오는 바람에 아이들을 태운 나룻배가 뒤집혀 타고 있던 17명의 아이들이 죽음을 당했다. 그 때가 1970년대였고, 이 사건 이후로 다리가 놓여진 것이 2001년도의 일이었다. 강을 바라보며 그 아이들의 넋이 지금은 내 나이쯤이겠다 싶은 생각이 드니 안타까운 마음이 더해진다.

후도교를 지나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걸어본다. 저쪽에서 보던 강의 모습과 이쪽에서 보던 강의 모습이 또 다르다. 산이 그늘이 되어주었다는 것을 산을 지나서야 알게 된다. 이 강도 지금 이 모습이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들이 있을텐데, 지나가서야 가슴을 치며 알게 되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 든다. 4대강정비사업이라는 ‘후회’를 돈을 많이 들여, 열심히 짓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보니 더욱 그렇다.

 여울에 살을 맞대고

후도리 마을회관에서 시작하여 방우리로 접어든다. 트래킹을 시작하며 약속했던대로 - 첫 여울은 맨발로 건너자던 약속 - 모두 맨발로 강을 건넜다. 여울 앞에서 아이와 어른 모두 앉아 신을 벗고 양말을 벗는다.

 여울은 정겹다. 가까이 가면 안녕하며 자기 속마음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물 아래로 보이는 작은 돌과 돌 위에 앉은 이끼들, 작은 생명들을 품은 그 여린 속을 오는 이마다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 여울 앞에서 나 조차 속을 숨길 이유는 없다. 신을 벗고, 양말을 벗어 여울 속에 내 살을 맞대본다. 사람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다. 살에 닿는 자연의 감촉은 기계로 만들거나 인공적으로 지어낼 수 없다. 내 발에 닿는 자연은 있는 그대로가 축복이다.

여울에서 가장 신나는 건, 아이들이다. 여울을 건너다가 다 큰 아저씨들(?)과 찰방거리며 물장난을 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서로 까르르 웃으며 물놀이를 한다. 옷이 젖을까봐 걱정하지도 않고, 누가 보면 철딱서니 없다고 할까봐 걱정하지도 않는다. 아이들의 특권이다. 

첫 여울을 지나고 큰 여울을 세 번 만났다. 어떤 여울은 물줄기가 세차 혼자 건너기가 어렵다. 서로 손을 잡아주고 부축해가며 강을 건넜다. 여울을 건너는 코스는 서로 손을 잡고 정을 쌓는 코스이기도 하다. (남자끼리 자연스레 손잡다가 서로 화들짝 놀라기도)
여울을 건너건너 금산 적벽으로 나오니, 놀러온 사람들의 차로 강변이 가득하다. 지나왔던 강의 모습이 꿈같이 느껴졌다.

금산에 사는 이상덕 대표댁을 마지막 코스로 방문했다. 시원한 보리음료(?)와 직접 농사지은 고추와 오이로 안주를 내 주었다. 최고의 안주였다. 매월 함께 트래킹에 오는 초등학생 하영이가 닭을 보더니 우리도 키우자며 엄마에게 조른다. 너무 귀엽단다. 동생 재민이랑 앉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

음료수와 안주도 모자라, 대표님이 봉지를 내오시더니 밭에 상추랑 쑥갓 뜯어가라고 내주신다. 사모님까지 동원(?)되어 밭에서 상추와 고추, 쑥갓을 한아름 따서 트래킹에 온 회원들에게 기어이 한 봉지씩 쥐어주신다. 어렵게 농사지은 것들을 녹색연합 회원이라는 이유로 나눌 수 있다니, 정말 마음 든든하다. 트래킹에서 만났기 때문에, 녹색연합 회원이어서 될 수 있는 ‘제 것 내어주는 사이’다.

돌아가는 길에서 나눈 회원들의 소감 속에서 깊어가는 트래킹의 정을 느꼈다. 강을 처음 온 이도, 매번 오는 이도 힘들지만 또 오게 되는 동력은 바로 발 뺄 수 없는 ‘정’과 강의 생명력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