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방문
기관방문
  • 백제뉴스
  • 승인 2011.06.1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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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의집도 다른 복지기관이나 시설과 마찬가지로 기관방문을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이 있다. 후원금이나 후원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방문하는 후원자들, 사회복지 실습이나 자원봉사를 하기 전 벧엘의집에 대해 알아보려고 방문하는 사람들, 홈리스나 의료문제 또는 사회적 기업 등 벧엘의집 사역과 맞물려 있는 것들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 실태파악이나 인터뷰 등 기사를 쓰기 위해 방문하는 기자들, 사회복지 분야에서 홈리스에 관한 내용을 알고 싶어서 방문하는 사람들, 관련분야에서 일하는 정부나 기관 관계자들, 정치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한다. 이들은 각각의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찾아온다.

그럴 때면 벧엘의집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우리 기관의 창립정신이나 비전 등 벧엘의집 사역에 대해 열심히 방문자들에게 설명한다. 후원자들에게는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고, 그 후원금으로 우리 기관이 어떻게 비전과 이념을 실현해 가는지를 기관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자원봉사나 실습을 위해 찾아오는 방문자들에게는 사회복지 전반에 대한 이야기와 벧엘의집만의 고유한 비전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 기관이 사회복지 영역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슈를 가지고 찾아오는 기자들에게는 벧엘의집이 그 이슈에 대해 어떤 대안을 가지고 실천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각각의 이해와 요구 외에 벧엘의집 방문객에게 공통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벧엘의집 이념이다. 창립정신은 무엇이고, 그 창립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는 빼놓지 않고 설명한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운용하느냐 보다, 왜 그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이념과 비전을 빼놓지 않고 설명하는 것이다.

방문객들이 벧엘의집을 방문할 때는 대부분 미리 연락을 해 언제 방문할 것인지를 약속하고는 그 시간에 맞춰 방문한다. 이럴 때는 우리도 나름대로 기관소개서를 준비하고, 약간의 다과도 준비하는 등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렇지 않고 촉박하게 연락을 하고 방문하는 경우는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기관장 대신에 사무국장인 조부활 목사가 손님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에도 방문객에게 벧엘의집에 대한 설명은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방문하기 오래전부터 약간은 떠들썩하게 하고는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정치인이나 중앙정부 등의 고위직 공무원들이 방문할 때다. 이럴 때면 사전에 방문 일정을 잡고, 방문자와 대담할 참석자의 범위가 정해지고, 얼마나 머무를지도 사전에 결정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그 일정과 요구에 맞춰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한다. 손님이 오니 청소도 하고, 때론 평상복이 아닌 정장차림도 하고, 손님과 나눌 이야기의 내용도 사전에 어느 정도 결정한다. 이렇게 손님 맞을 준비가 끝나면 방문객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다 정작 방문하기로 한 방문객이 별 이유 없이 방문을 취소해버리면 허탈을 넘어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벧엘의집이 유명한 기관도 아니고, 함께 일하는 일꾼이나 가족들도 유명인이 아니기에 제 멋대로 온다고 했다가 취소하면 그만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근래 야베스공동체는 심심치 않게 외부 손님들이 방문을 한다. 야베스공동체가 비록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분야에서 끊임없는 대안을 찾다보니 대전시에서 모범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잘하는 기관이라고 인정해 주면서 중앙부처 고위직 공무원들이 대전 방문의 기회가 있으면 둘러볼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다. 이럴 때면 야베스공동체에 대한 우리의 시도가 헛되지는 않았구나 생각되기도 하고, 일하는 일꾼들이나 가족들은 나름대로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힘도 생기고 기분이 약간은 들뜨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대전시로부터 서울에서 손님이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손님이 온다고 하니 야베스공동체는 아침부터 부산스럽다. 청소도 하고, 평소에 입지 않던 단체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공장 안내는 누가하고,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등 나름대로 손님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하고는 손님이 오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지나도 오기로 한 손님은 연락도 없이 오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다음 바쁜 일정 때문에 방문할 수 없다는 통보만 남기고 가 버렸다. 순간 이게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바빠야 하고, 이런 기관을 방문할 때는 빠듯하게 일정을 짜야하고, 그래서 한 곳에서 일정이 엇나가면 나머지는 쉽게 약속을 깨도 된단 말인가? 우리같이 힘없는 사람들에게 높으신 양반이 온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영광이었고, 한편으로는 야베스공동체가 그래도 인정을 받는구나 하면서 뿌듯해 했는데, 단지 당신의 일정으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부심마저 이렇게 여지없이 무너트려도 된단 말인가? 지난해에도 서울에서 손님이 방문한다고 떠들썩하게 해 놓고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방문을 취소하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전화 한 통화로 방문을 취소한 것이다. 손님이 못 온다는 말에 공장 식구들은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다시는 그런 손님에게는 기관방문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나에게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반값 등록금 문제로 떠들썩하다. 그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대통령 공약으로 대학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겠다고 국민들과 약속한 것인데, 집권 후반기가 되었음에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자 학생들이 공약을 지키라고 촛불을 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지키지 않을 약속이었으면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지 국민과 철석같이 약속을 해 놓고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것인가? 도리어 가진 사람일수록, 사회 지도층일수록 한 번 약속한 것은 더욱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만 그 사회가 건강해지고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값 등록금 문제로 강의실이 아닌 거리로 나오는 젊은 세대를 보면서, 방문을 쉽게 펑크 낸 고위직 인사들을 보면서 약속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