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란 듯이 성공해서 오고 싶었어요
보란 듯이 성공해서 오고 싶었어요
  • 벧엘의 집 원용철 목사
  • 승인 2011.06.0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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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는 성공 신드롬에 빠져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며,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등 소위 성공한 삶이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며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혹사시키고 있다. 직장에서도 남보다 먼저 승진하고, 많은 연봉을 받는 등 성공한 샐러리맨이 되려면 동료와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성공한 삶은 곧 경쟁에서 이기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것뿐만 아니라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들도 대부분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나 성공을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책들로 너나 할 것 없이 성공에 미쳐 돌아가고 있다.

과정이야 어쨌든 경쟁에서 승리하면 최고라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 전체가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는 성공한 사람, 성공한 삶이란 무엇일까? 대부분은 높은 지위에 있거나, 돈을 잘 벌거나, 좋은 직장에 다니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들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런 것이 성공이라면 무작정 경쟁에서는 이겨야 하고, 때론 적당히 원칙과 규칙을 어겨가면서까지 돈을 잘 벌고, 부를 축적하면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공을 사전적으로 풀이해보면 “목적한 바를 이룬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큰 목표를 세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작은 목표를 세우는 이도 있을 수 있다. 또는 높은 지위, 풍요로운 삶을 목표로 세우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나누고 섬기는 것을 목표로 삼거나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성공이 목적한 바를 이루는 것이라면 작은 목표를 세우거나 나누고 섬기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사람도 나누고 섬기며 살아가고, 소시민으로 살아가면 성공한 삶이다. 그런데 사회는 그런 사람은 성공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원칙과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칭송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어린이나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말하라고 하면 대부분이 인류에 도움이 되는 사람, 훌륭한 사람, 사회에 유익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돈을 많이 벌겠다는 아이는 그리 많지 않다.

혹 돈을 많이 벌겠다는 아이들도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려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돕기 위해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세운 아이들의 성공한 삶이란 그 목표를 달성하면 되는데 어른이 되어 가면서 그 목표는 전혀 다른 자기만을 위한 목표로 변질되고, 어느 순간에는 오직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살아간다.

이렇게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 경쟁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끝없는 경쟁 속으로 휩쓸려간다. 그런데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괜찮은데 그것조차도 거의 희박한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 여간 안쓰러운 것이 아니다. 이미 인생의 쓰라린 실패와 좌절로 인해 사회로부터 거의 도태 되다시피한 사람들이 자신이 실패한 것은 운이 안 좋아 그런 것이지 언제든지 다시 재기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허망한 꿈을 꾸며 불빛에 모여드는 불나방처럼 경쟁의 톱니바퀴에 끼여 버린다.

백번을 양보해서 그런 성공이라도 이루려면 다른 이들보다 더 부지런해야 하며, 더 노력해야 하고, 끈질기게 버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나 애씀도 없이 운이 좋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벧엘의집 울안공동체 식구들 중 많은 분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미 성공과는 거리가 먼데도 한탕만 잘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있는 것이다. 사회로부터 밀려나 울안공동체까지 왔다면 하루빨리 다시 복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도 계단을 오르듯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려고 해야지 점프를 하듯 단번에 계단을 오를 수는 없는 것이다.

울안공동체에 이 0 0 아저씨가 계신데 얼마 동안 울안공동체를 떠났다가 다시 오신 분이다. 그 분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울안공동체를 말도 없이 떠난 것은 남보란 듯이 성공해서 다시 오고 싶어서였다는 것이다.

  어쩌면 울안공동체에 있는 많은 분들이 그런 생각일 것이다. 지금은 비록 쉼터 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한탕만 잘되면 다시 옛 영화를 되찾을 수 있다는 꿈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그들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일어서려면 준비도 해야 하고, 끈기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함에도 그런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운이 좋으면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에게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분은 내년이면 60세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서서히 내려놓으면서 살아갈 나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렇다. 자꾸 성공만을 쫓다보면 끝내는 자신만 불행해 지는 것이다. 도리어 오늘의 삶에 만족하고,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이것보다 더 성공한 삶이 있을까?

  많이 가지는 것만이 성공은 아니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성공은 아니다. 도리어 져주고, 덜 갖는 것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함께 가는 것, 이것이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성공하는 길은 아닐까? 성공한 삶이란 누가 뭐래도 현재에 만족하며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 참 의미의 성공한 삶일 것이다. 보란 듯이 성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성공한 삶을 만들어가는 길인 것이다.

인생의 목표를 요행수나 바라고, 경쟁에서 이기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족하고 나누며, 더불어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을 목표로 삼아 그것을 이루어 간다면 그것이 참 의미의 성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