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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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뉴스
  • 승인 2011.05.2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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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의집이 공사도 마감하지 못한 채 이사를 했다.

이렇게 이전을 강행한 이유는 처음 계획을 세울 때 4월말까지면 공사를 마무리하고 이전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이전할 곳의 임대료를 5월초부터 납부하기로 계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계획한 기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아 당장 공사비도 부족한데 양쪽에 임대료를 지급할 수가 없기에 우선 급한 대로 마무리를 하고 이사를 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공사를 인테리어업자에게 맡겼다면 비록 비용은 많이 들어도 계획한대로 4월말에 공사를 마치고 이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족한 공사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다보니 공기는 지연되고, 모양새는 깔끔하지 않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게 된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이사를 할 수 있는 만큼 공사를 마치고 이사를 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즉 옥상 방수, 끝마무리 등은 이사를 한 후 공사비가 마련 되는대로 천천히 진행하기로 했다. 다행히 대책이 없을 것 같았던 이사가 짐을 대충 정리하고 나니 제법 괜찮아 보였다. 진료소며 쉼터며 사무실 등 사무집기의 위치를 잡고, 옷장이며 이불장 등을 숙소에 배치하고, 사물함을 설치하고, 식당의 냉장고며 식탁 등을 정리하고 나니 제법 모양새가 나왔다.

이번 벧엘의집 이전은 처음 계획을 하면서 기도했던 대로 2천 년 전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갈릴리 바닷가의 사건처럼 놀라운 기적이었다. 이전 공사비가 약 8천만원 정도 소요된다고 했지만 공사를 시작할 당시 약 3천만원 정도 밖에 모금된 것이 없이 나머지는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만으로 시작을 했다. “네 믿음대로 될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대로 뜻을 세우고 거의 무지막지하게 추진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기로 약속한 땅인 가나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믿고 앞으로 가라면 가고, 머물라면 머물렀던 것처럼 벧엘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새로운 공간이라는 가나안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그런 믿음이 가상해서였을까? 돌아보면 벧엘의집 이전은 양쪽의 톱니바퀴가 서로 정확하게 맞물리면서 돌아가듯이 순간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비록 공사 기간은 예정했던 것보다 길어졌지만 크게 어긋나지 않고 착착 진행되어 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지나가야 하는 곳이 바로 광야였다. 현재는 이집트에서 요르단을 지나 요단강까지 이어지는 길로 그 길을 지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한 길이었다. 분명 이 계곡을 지나면 물이 있는 오아시스를 만날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방향이 어긋나면 며칠을 가도 물을 찾을 수 없어 죽을 수도 있는 곳이 광야였다.

또한 어떤 경우는 하루 길을 간 다음 바로 오아시스를 만나지만 어떤 경우는 며칠을 가도 오아시스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광야를 지나면서 경험한 것은 단지 과거의 경험일 뿐 앞으로 생존에 필요한 지식은 되지 못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믿고 갈 수 밖에 없는 곳이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다른 길로 간다면 요행히 오아시스를 만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기에 그들은 지금까지 살아 있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길인 것이다.

이렇게 벧엘의집 이전 과정도 돌아보면 순간순간 자로 잰 듯 준비된 사람들을 통해 기적을 일구어낸 것이다. 대부분의 공사가 자원봉사나 자력으로 진행하다보니 조금만 어긋나도 공사가 중단되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리고 다시 공사가 재개되기까지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야만 가능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전기공사의 경우를 보면 그 공사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없이는 불가능한 공사이다. 칸막이공사나 배관공사, 보일러공사 등은 숙련된 기술 없어도 설명서를 보거나 기술 자문을 받으면 어느 정도 해낼 수 있었지만 전기 공사는 말 그대로 자격자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공사였다.

그래서 전기 공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 다행히 쉼터에 계신 아저씨 한 분이 이전에 전기공사 감리를 했던 분이어서 그 분이 전기공사를 도맡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분이 어느 정도 일을 하다가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대로 전기공사는 중단된 것이다. 다른 공사를 마무리 한다고 해도 전기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이전이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다행히 주거지원을 통해 매입임대주택으로 가기 전까지 10여일 정도 머무를 곳이 없어 울안공동체에 오신 아저씨가 마침 전기 공사를 수 십 년 한 분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중단되었던 전기공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 후 그 아저씨는 약속한 기일이 되어 벧엘을 떠났다. 하지만 아직 전기공사는 마무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직장에 다니는 봉사자가 와서는 한 달에 두 번 있는 휴일을 통해 어느 정도 마무리를 해주었다. 이렇게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상황들이었지만 매순간 그 자리에 필요한 사람들을 통해 공사는 더디지만 진행된 것이다. 미리 순서를 짜고 일의 양을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럭저럭 톱니바퀴가 맞물리듯이 진행되어 간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일을 경험할지 알 수 없다. 다만 불의의 사고나 어려움이 없이 지나가길 바라며 오늘을 살아간다. 단지 어제도, 그제도 아무 탈 없이 지냈기에 오늘도 그럴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예고 없는 어려움이 닥치기도 하고,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며, 슬픈 일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어려운 일이나 슬픈 일들이 해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절묘하게 위기를 넘기기도 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가기도 하고, 슬픔을 이겨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살아온 날들 자체가 기적인 셈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광야 길을 지나야 했지만 그 길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가나안에 도착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광야 길과 다르지 않다면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을 만날지 모르지만 그래도 희망이라는 것을 놓지 않으면 그 희망이 기적의 동력이 되어 어려움과 좌절을 극복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나온 날들을 반추해보면 순간순간 어려움과 슬픔, 좌절이 있었지만 희망을 통해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희망은 곧 광야길 같은 인생의 기적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바라기는 벧엘 식구들이 희망을 놓지 않음으로 오늘의 실패와 좌절을 넘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길 기도한다.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