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행복이 별건가요
뭐! 행복이 별건가요
  • 백제뉴스
  • 승인 2011.04.2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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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의집이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이전을 위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매월 300만원이란 월세도 한 걱정이지만 그것보다 공사비가 부족하여 건축업자에게 공사를 맡기지 못하고 실무자들과 울안공동체 식구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쉼터 칸막이를 하고, 보일러를 설치하고, 샤워장 타일을 붙이고, 방수를 하고, 식당 타일공사 등50여명이 숙식을 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공사를 아저씨들과 함께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비록 힘은 들지만 자신들이 살 집을 만든다는 생각에 조금은 기대도 되고 즐겁다고 한다. 울안공동체 식구들의 대부분은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들떠있는 것 같다.

현재의 울안공동체는 40여명이 생활하는 공간으로서는 너무 협소하고 열악하다. 침실 3개, 화장실도 단 한 개, 세면장은 간신히 두 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이고, 주방도 두 사람이 들어가 조리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새롭게 옮겨지는 공간은 침실만 13개, 세면장도 한꺼번에 대여섯이 들어가서 샤워를 할 수 있으며, 2층에서 5층까지 각 층마다 화장실도 있어 말 그대로 단칸방에서 대저택으로 옮겨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3층 옥상의 경우는 휴게실로 꾸미겠다는 내 말에 나름대로 탁구대도 설치하고, 당구대도 설치하고, 운동기구도 설치하는 등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는다. 울안공동체 식구들에게 새로운 공간으로 이전한다는 것은 단순히 쉼터 공간이 좀 넓어지는 의미 이상인 것 같다.

우리에게 집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현대사회에서 주택은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 이상인 것 같다. 부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재산증식의 방편이 되기도 하며, 신분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파트단지가 많은 곳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는 살고 있는 집의 평수에 따라 친구가 되기고 하고, 왕따를 당하기도 한단다. 이것은 이미 집의 고유한 의미를 넘어선 것이 아닐까? 집은 가족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고,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으로 몸을 부대끼며 사는 최소 단위의 외형적 울타리이다. 그래서 그 최소 단위를 우리는 가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함께 지내는 공간 이것이 집이고, 집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은 가족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벧엘의집 식구들도 예전에는 살아온 배경은 다르고, 성씨도 다 다르지만 지금은 함께 먹고 자기에 가족인 것이다. 이런 가족공동체인 집이 너무 비좁고 열악하다 보니 서로 의견이 부딪치고 얼굴을 붉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아주 좋은 곳은 아니지만 면적이라도 넓혀서 함께 사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일반 사람들이 볼 때는 뭐 대단한 곳으로 이사하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좋아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현재의 공간에 비하면 우리가 이사할 곳은 대 저택이나 다름없다. 그러기에 우리 가족들은 이사할 곳을 생각하며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행복이 아닐까?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함께 기뻐하며 내일처럼 서로 도와가며 만들어가는 공동체 그 자체가 행복일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말이 있다. 걸어가야 하는 사람에게 말을 타고 갈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며 희망일 것이다. 그러나 말을 타고나면 종을 부리고 싶은 것처럼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기에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가고 나면 또 불편한 것들이 생기고 지금의 흥분도 가라앉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행복하다. 함께 살 집을 만들고, 각각 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나누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집이기에 한없이 행복하다. 어린아이처럼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다. 뭐 행복이 대단한 것인가? 현재의 생활에서 조금 나아진 것을 가지고도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처럼 행복한 것은 없을 것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는 사람은 다음에도 행복해질 수 없다.

토마스 하디의 ‘내일’이라는 단편소설에서처럼 마을사람들의 오해와 조롱을 견디면서 아들이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매일같이 부두에 나가 아들을 기다리던 노인에게 기적같이 아들이 살아 돌아오지만 그 다음날도 노인은 어김없이 부두에 나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살아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가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이 지금 여기에 살아서 돌아왔다고 말하자, 아니 내 아들은 내일 꼭 살아서 돌아올거야 라며 절규하던 아버지처럼 오늘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 지금 행복할 수 있어야 다음에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하루 세 끼를 다 먹었고, 비록 다리 밑 거적을 깐 잠자리이지만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 거지처럼 오늘 하루에 만족하고 행복해 한다면 우리 인생은 늘 행복할 것이다. 비록 경제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혈육하고도 함께 지내지 못하고, 노숙인 신세가 되어, 노숙인 쉼터인 울안공동체에서 서로 얼굴도 몰랐던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하지만 오늘을 행복해하며 내일을 위해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한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요, 삶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당신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에서 나도 행복을 봅니다. 행복! 뭐 별거 있나요, 지금처럼 작은 변화에도 감사하고 만족하는 것이 바로 행복인거죠.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