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살아있는 무주 엇여울을 걷다
생명이 살아있는 무주 엇여울을 걷다
  • 박은영 대전충남녹색연합 국장
  • 승인 2011.02.2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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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녹색연합과 함께하는 금강트래킹

2월 19일이 우수(雨水)였다. 눈이 녹아 물이 된다는,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와 경칩.
우수되고 5일이 지나면 수달이 물고기를 잡으러 밖으로 나오고, 기러기가 추운 곳을 찾아 떠나게 된다고 한다.
생명이 나타나고, 떠나는 자리를 알리는 시기에 금강을 걸었다.

마을과 마을 사이, 둥근 바퀴 같은 강

9시에 대전을 떠나 도착한 곳은 금산군 부리면 도파리. 도파리 정자 아래로 포크레인이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다.
금산군 금강길에는 어디나 주황색 포크레인이 있는 것 같다. 자전거길인가, 꽃밭인가.
도파리 장금정에서 우리는 오전 일정을 시작했다. 드라마 대장금의 배경이 되었다고 해서 장금정이라는 이름이 붙은 정자.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적벽강은 참 평화롭다. 한 쪽으로 회색 제방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 보기 싫을 뿐이다.
강의 좌안을 따라서 약간 위태로운 산길도 헤치며 봄이 오는 금강의 모습을 바라본다.
버들강아지가 햇빛에 반짝이는 것을 보니, 절로 탄성이 나온다. 그래, 네가 봄이구나.
부들부들한 버들강아지를 만져보니 여린 봄의 숨결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 하다.
수통리를 안고 둥글게 흐르는 강을 보니 문태준 씨의 <저물어가는 강마을에서>가 생각났다. 마을과 마을 사이 둥근바퀴같은 강.
강 안쪽으로 넓게 형성된 수통리의 농지 안 쪽에는 용이 살았다는 대늪이 있다. 대늪은 현재 작은 둠벙으로 작아졌지만, 둑을 쌓고 물길을 막아 농토가 되기 전에는 대벌과 대늪은 큰 물이 들때마다 광활한 물바다였다.
둑에 쌓였던 드넓은 백사장은 대전-통영 고속도로 공사 때 싹 쓸어갔고, 백사장은 용담호로 자갈밭으로 변하고 있다.
수통리 농지 아래쪽으로는 제방이 쌓여지고 있었다. 함께 간 정동국 운영위원은 농지를 보호하기 위해 제방을 쌓는 것보다 차라리 농지를 매입해서 그대로 두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이득이라는 의견이다.
눈이 녹아 철벅한 진흙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으며, 금강의 힘찬 내음을 맡으며 우리는 엇여울까지 다다랐다.

생명의 보고, 엇여울

엇여울은 무주에서 내려오는 금강이 금산의 시작인 방우리 농원마을을 지나고, 지렛여울을 건너 갈선산 급경사 협곡 2km를 흐르다가 물길이 엇비스듬히 넓게 퍼져내려가면서 형성된 여울이다.
이 여울목은 무수사람이 금산장을 가기 위해 건너던 지름길이었지만, 방우리가 무주에 생활권을 두면서 사람의 왕래가 없다보니 생태와 경관이 잘 보존된 금강 최대 비경지가 되었다.
그런데 이 곳에 다리를 놓는다고, 금산군에서는 설문조사도 하고 있다.
다리가 놓여진다고 방우리 주민들이 금산까지 나오기는 만무하다. 무주에 생활권을 굳힌 터라, 교통로 역할은 활성화되기 어렵다. 다리를 놓는다해도 연결되는 도로가 없으면 그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도로는 언제 놓일지 알 수 없다. 국비로 다리를 놓을 수 있으니 이 기회를 놓치기 싫을 뿐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여기에서 외쳤다. 이곳에 다리를 놓지 말라고. 엇여울의 뛰어난 생태계를 사람의 발길로 또 해치지 말자고.

고운모래와 자갈길을 걷다

맛있게 어죽을 먹고 다시 오후 일정에 올랐다. 고운 모래길을 만나 신을 벗고 맨발로 걷는 손장희 회원님.
눈이 녹기 시작하는 길을 걷는 것이 만만치는 않다. 이것도 다 봄을 만나는 과정이겠지 생각하며, 무거운 발을 디딘다.
아직 녹지 않는 눈길을 만나기도 하고, 강물의 두터운 얼음길 위를 걷다가 와락 넘어지기도 했다.
트래킹다운 트래킹을 제대로 하는 것 같다. 용화리로 들어서는 금강에서 넓은 자갈길을 만났다.
모두 자갈길에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도 나누고 예쁜 돌이 뭐가 있나 살펴본다.

금강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들은 순수하고 소박하다. 고운모래, 자갈돌, 물길의 흐름. 하지만 사람은 그것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가.
돈인가, 아닌가. 욕망으로 가득찬 눈으로 금강을 본다면, 우리는 금강을 볼 자격이 없다.
더 비워야 금강이 보여주는 것들을 순수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