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 백제뉴스
  • 승인 2011.01.1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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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는 열 가지 계명을 지키라고 명령하셨다. 이 열 가지 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법이었다. 그래서 다섯 번째까지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지켜야할 도리를, 여섯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할 도리를 명령하신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살인하지 말라는 법이다. 살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중대한 사건이기에 살인하지 말라는 법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현대에도 살인은 중대한 범죄이다. 그래서 살인자에 대해서는 무겁게 처벌한다. 그렇다면 살인의 범위는 어디까지라고 해야 하는가? 단순히 사람의 목숨을 직접적으로 해치는 것만이 살인인가? 예수님은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살인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려면 직접적으로 목숨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이웃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주위에는 종종 독거노인이 집에서 돌아가신지 한 달이 지나서 발견되고, 길을 가다 쓰러져 있는 사람을 구해주기 보다는 피해가는 것이 당연하고, 이웃집에서 비명소리가 들려도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런 것들이 살인행위라고 생각하지 않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의 하나로 여기며 지나간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타살을 당하고 있다. 엊그제도 이런 사회의 무관심으로 한 분이 타살을 당했다. 아니 내가 무관심이라는 살인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조석현, 78년생, 2009년 10월 9일자로 국립목포병원에 입원하였음. 입원 당시 상황은 폐결핵이 많이 진행된 상황여서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있었다고 함. 가족 등 사회, 경제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없으며 노숙과 쪽방을 반복하며 생활함.

 다재내성 결핵환자로 집중관리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2010년 추석 즈음 며칠 외박으로 나갔다가 귀원하지 않아 희망진료센터로 연락한 적 있었으나 이후 귀원하였다는 소식 받음. 병원 규칙에 따르지 않고 술을 지속적으로 마셔 병원에서는 병실을 옮긴 적도 있고 여러 차례 경고 조치하였으나 지켜지지 않아 2011년 1월 6일 강제 퇴소조치 됨.

목포병원에 함께 입원하였던 김 0 0님에게서 조석현님이 강제 퇴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음. 목포병원에 연락해보니 담당 간호사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었으나 술을 지속적으로 먹고 병원 규칙도 무시하고 술로 인해 다른 환자들에게 영향주기 때문에 더 이상 병원에서는 있을 수 없어서 강제 퇴원조치 하였다”고 함.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이 사람이 갈 곳이 없음을 설명하자 한 달 안에 재입원은 불가능하고 한 달 후에 입원신청하기로 함. 1월 14일 아침 희망진료센터에 내원하였으며 주간 업무회의중이라 홈리스지원센터에서 기다리라고 함. 홈리스지원센터로부터 조석현님이 강제 퇴소이후 노숙하면서 계속 술을 먹었으며 황달도 심해보이고, 입가에 피 묻은 흔적도 있으며 몸 상태가 너무 나빠 보이므로 119구조대라도 전화하여 병원에 빨리 가야 할 것 같다는 연락 받고, 충대병원 응급실로 가서 응급조치하기로 하였으나, 이후 119구조대 측에서 충대병원은 자체 심사를 통해 환자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아 선병원으로 간다고 해서 그렇게 조치했다는 연락 받음.

15일 선병원측에 환자 확인하였으나 응급실에 내원한적 없다고 하여 119구조대에 확인한 결과 선병원측에 인계하고 싸인을 받았다고 함. 119구조대 측에서는 인계받은 측에서 싸인을 하였다고 하나 환자가 입원 거부하면 선병원에서는 어찌할 수 없다고 설명함. 선병원측에서는 119로 와도 기록이 남지 않는 이유는 환자가 입원을 거부하고 그냥 나가거나, 선병원(2차병원)에서 해결할 수 없어 큰 병원(충대병원이나 을지대병원)에 보내는 것이라고 함.

충남대병원, 을지대병원에 환자가 내원한 적이 있는지 확인하여 보았으나 내원한 적 없다고 함. 목포병원에 퇴원 당시 환자의 건강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전화하였더니 15일 새벽 사망했다는 소식을 대전 서부경찰서에서 받았다고 함. 담당형사에게 사실 확인결과 “건양대학병원 대합실 긴 의자에 사람이 누워 있어서 병원에 더러 그런 사람이 있어 그런 줄 알았는데 계속 신음소리 들리기에 봤더니 의자에서 항문과 입에서 피가 나오고 있어 응급조치하였으나 사망하였다”고 함. 사인은 위장관 출혈.

희망진료센타 담당자가 작성한 조석현님의 사망 경위서이다. 석현씨의 죽음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그의 죽음이 병사가 아닌 타살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나의 무관심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자책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진료소에서 일을 하다보면 국가의 의료체계나 종합병원들의 시스템에 적잖은 불편을 겪을 때가 많다. 그래서 이번의 경우에도 사람을 보기 보다는 그런 체계에 대한 개선을 위한 한 방편으로 접근했었다. 즉 결핵환자이고 아무리 입원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아무 대책 없이 거리로 내몬 병원이 미웠고, 우리나라가 잘 갖추어진 의료 전달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자랑하는 정부의 대책 없는 홍보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정말 대책 없이 거리로 내 몰린 환자를 가지고 정부의 정책과 병원의 폭력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삼으려고 한 것도 사실이다. 모세의 율법을 어긴 한 여인을 향해 살기등등하게 돌을 집어든 무리들처럼 사회의 비상식과 정부의 정책만을 보려고 했을 뿐 정작 나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을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는 아무 대책 없이 거리로 내몬 현실보다 지금 당장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종합병원 대합실에서 쓸쓸히 죽어갔다. 그가 죽어가는 순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희망진료센타에서 일하는 것이 무슨 큰 권력라도 되는 양 우쭐대지는 않았는가? 실무자들에게 희망진료센타는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곳이라고 하면서 늘 환자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비록 의사는 아니지만 살리는 사람이 되자고 말하면서도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무관심의 동참자가 되어 버렸다.

그는 살기 위해 마지막으로 희망진료센타를 찾아 온 것이다. 목포결핵병원에서 강제퇴원을 당한 직후는 희망진료센타를 찾아올 면목이 없어서 자포자기하고 일주일 동안을 술로 살았겠지만 마지막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올 때 사력을 다해 희망진료센타를 찾아와 살길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겉이 딱딱해진 나는 예전의 생명살림의 정신은 잃어버리고 또 다른 반대급부를 노린 것은 아닌가? 환자가 죽어가고 있는데 무엇이 우선인가? 물에 빠진 사람은 우선 건져놓고 그 다음에 왜 빠졌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따지고 해결하자고 했는데 지금은 물에 빠진 사람을 보는 눈이 변한 것이다. 아니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보지 않은 것 같아 너무 아프다.

누군가가 조금만 관심을 갖고 그를 보았다면 그렇게 죽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번만 더 황달이 있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면, 한번만 더 입가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았다면 혼자 신음하게 놔두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의 죽음은 운명이라고 쉽게 말해버린다. 이 사회의 무관심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아닌가? 희망진료센타도, 홈리스센타도, 목포병원도, 119구조대도, 선병원도, 건양대병원도 아니 누군가가 조금만 더 관심을 보였다면 그의 병세를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고 치료를 받게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가 우리를 향해 살인하지 말라, 아니 무관심하지 말라고 절규하는 소리가 내 귓전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