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 선물문화 변천에 관한 소고(小考)
<가제> 선물문화 변천에 관한 소고(小考)
  • 백제뉴스
  • 승인 2010.09.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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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만/국민권익위원회 홍보담당관(정치학박사)

민족의 최대 명절 추석이다. 도움을 받은 분들이나 스승과 어른들에게 떡값이나 촌지를 건네는 선물철이다. 선물은 받아서 흐뭇하고 줘서 기쁘다. 거기다 정성까지 더하면 감동이 배가된다. 일상생활에서 고마운 분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게 주는 선물은 인간관계를 끈끈하게 연결하는 삶의 청량제이자 윤활제다. 이런 좋은 의미의 선물이 뇌물로 포장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본래 의미를 상실한 선물에 관한 말들이 꽤 있다.

특히 작은 정성의 표시인 ‘촌지’가 그렇다. 원래는 서당에서 글을 배운 훈장에게 은혜 표시로 가을에 수확한 농산물을 건네던 데서 유래됐다. 그런 촌지가 이제는 단위가 점점 커져 뇌물로 둔갑했다. 특히 ‘내 자식만 잘 봐 달라’는 뜻으로 촌지를 준다고 하니 은혜 보답의 순수성은 많이 퇴색했다.

‘떡값’이란 말도 그렇다. 떡은 추석같은 명절에 조상에게 바치고 이웃끼리 나눠먹는 전통 음식이다. 이를 만들기 위한 떡값은 설이나 추석 때 직장에서 직원에게 주는 특별 수당, 보너스다. 명절 때마다 종업원들은 으레 떡값이 얼마나 나올까 궁금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근래 어느 법정에선가 뇌물 여부를 캐는 심문에 피고인이 ‘뇌물이 아니고 떡값’이라고 답변하면서 떡값의 의미는 뇌물로 굳어진 느낌이다. 법정에 선 죄인들은 수천만원 수억원의 뇌물이 떡값이라고 주장하지만, 떡을 만들어 파는 상인들은 무슨 떡값이 그렇게 비싸냐고 거세게 항의한다. 한 달 내내 만들어 팔아도 1천만원 어치를 못 파는 데... 기막힌 아이러니다. 서민들로서는 상대적 박탈감과 허탈감 뿐이다.
   
올들어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스폰서(sponcer)도 사전적으론 좋은 의미다. 후원자란 이 영어는 행사, 자선 사업 따위에 기부금을 내어 돕는 사람이나 기업을 가리킨다. 그러나 검색창에 ‘스폰서’를 쳐 봤더니 스폰서특검 차량스폰서 위장전입스폰서 스폰서수사관 스폰서총리 등 처음 들어보는 신조 속어들이 수두룩하다. ‘검은돈’을 대는 행위자로 둔갑된 것이다.

부정한 의미의 ‘향응’을 보자.

향응은 특별히 융숭하게 대접함. 또는 그런 대접이다.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 설치 관련법과 공직자행동강령을 보면 향응과 선물의 범위를 정해 놓고 공직자들이 이를 어기지 않도록 계도하고 있다.

선물은 대가 없이 제공되는 물품 또는 유가증권, 숙박권, 회원권, 입장권 등이다. 유가증권은 어음, 수표, 주식, 채권, 승차권, 상품권, 공중전화카드, 스키장 리프트 상품권이 포함된다. 영업권, 아파트 분양권 등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도 해당된다.

향응의 범주로는 룸살롱, 단란주점, 나이트클럽, 접대골프, 접대스키, 카지노, 경마장, 증기탕, 안마, 고급이발소 등을 예시하고 있다. 규정에 의하면 공직자는 직무관련자로부터 대가성있는 선물을 받지 못한다. 다만 대가성이 없는 선물은 가치를 3만원으로 예시하고 있다. 물론 직무관련자에게는 단돈 만원어치 선물도 받을 수 없다.

  선물의 가치를 놓고 부패방지 공청회를 열어보면 이론이 많다. 3만원도 1년 동안 열 번을 주면 30만원인데 이 정도면 뇌물 아니냐는 시민단체(NGO)들의 비판이 있다. 이에 대해 어린학생도 3만원을 큰 돈으로 생각 안한다며 예시 기준의 현실성이 낮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얼마 전 높은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정무직 청문회를 보면서 이제 우리나라도 깨끗한 공직사회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많은 홍역을 치르고 있음을 실감했다. 공직자들에겐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고 있다. 진정으로 은혜에 보답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간소한 선물문화가 정착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