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전쟁
  • 육복수 시인
  • 승인 2007.08.1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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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산골에서 매일매일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면 믿겠는가. 그러나 사실이다.

무지막지한 무기를 들지 않았을 뿐이지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새와의 전쟁이다. 그냥 날아다니면서 소리지르고 노닐 때는 그렇게 이뻐보이더니, 긴 장마가 끝나고 작물들이 익어갈 쯤인 요즘에 와서는 완전히 본색을 드러냈다.

사람이 먹을만하게 익은 작물은 그것이 무엇이든 흠집을 내놓거나 먹어치운다.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니라 떼거리로 와서는 말이다.

몇 개를 졍해놓고 먹고 난 다음에 다른 것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이 잡듯이 밭을 오가면서 이것저것을 다 쪼아서 먹다마는 형국이다. 살아있는 것에게 너무 야박하게 하는 거 아니라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그래 너희들도 먹어야 살지 하는 느슨한 마음으로 두고 보았더니 이건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다.

사람이 먹을 것을 모조리 빼앗아먹다시피 하니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강아지를 풀어놓고, 음악을 꽝꽝 틀어놓고 해도 별 효과가 없어 단골 농자재점에 문의를 하니, 맹독성 농약을 콩이나 쌀에 묻혀 술술 뿌려놓으면 간단하다는데 차마 그짓을 할 수가 없어서, 철물점에서 덫 몇 개를 사가지고 와서는 고추고랑이며 토마토 밭에 쫘악 펼쳐놓고는 좁쌀을 먹음직스럽게 흩뿌려놓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속으로, 이눔들아 지금까지는 좋았지 웬만큼만 먹어댔으면 내가 이렇게 까지는 안할거 아냐 걸리기만 해봐 그냥 확 잡아먹을거야, 라며 회심의 미소를 띄우며, 저녁 먹으면서 아내에게 덫 놓은 이야기를 했더니, 꼭 그렇게까지 해야되냐며 나를 나무라는 말투라 몇 마디 투닥거리다가 밖으로 나와서 마을로 나가는 오솔길을 따라 산책을 하는데도 마음이 편하지를 않아, 내 자신에게 되뇌어 본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힘들이고 돈들여서 애써 지어놓은 작물을 그눔들이 사정없이 쪼아대는 것은 안타깝고 미운짓이지만, 그눔들의 입장에서는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무기를 써가면서까지해서 내가 더 수확을 한다면 그게 즐겁고 속이 편한 일일까.

그렇게까지 복수심을 일으켜야 하나. 안되겠다 싶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 있던 후레쉬를 들고 밭으로 가서 덫들을 모두 거둬치웠다. 다행이 그 때까지는 아무놈도 걸리지 않았고, 아내에게 다 치웠다고 말하니 그냥 시익 웃는다.

그러나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농사하는 사람에게는 작물이 자식이나 다름없다. 그것을 망치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기는 어렵다. 덜 먹게 하거나, 헤치지않고 그놈들을 퇴치하는 방법이 최선 일텐데 그게 쉬는 일이 아닌것이 농사하는 사람들의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딜레마다.

내일은 더 무섭고 살벌하게 생긴 허수아비를 만들어봐야 겠고, 음악도 볼륨을 더 세게 올려놓고 살펴봐야 겠다. 일단 지금까지의 전쟁에서는 내가 졌다.

- 못 -

느닷없이 다가 올
당신을 기다리며
이마에 피를 모으며
휘어질 사랑일지라도
한 번의 불꽃을 기다리며
붉게붉게 녹슬어가는 것은,
만나면 다시는
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