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이른 아침, 고사리를 가지러 산으로 들어설 무렵, 내 집으로 오는 길목에, 종이 상자에 무언가를 담아 가지고 강아지 두 마리와 그가 오고 있었다. 멀찍이서 보아도 처음 보는 사람이어서 멀둥멀둥 보고 있는데, 이 집에 사시는 분이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어제 비가 와서 꽃 심으면 좋을 것 같아서 꽃모종을 좀 가져왔다고 하면서, 오롯이 오롯이 내 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와 사람의 말소리에 밤새 추위에 떨던 소나무 잎들이 파르르 일어나며 아침 산을 깨우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은 아내가 가지고 싶어 했던 서양제비꽃, 개미취 꽃 등이었다.동네에서 내 집 까지는 거의 십분 거리인데, 이른 아침에 난생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것도 꽃모종을 들고 와서, 심다가 모자라면 자기 집에 와서
농촌사는 이야기 | 육복수 /시인 | 2007-05-04 11:56
자주 보아서 낯이 익은 것인지, 나와 눈이 마주친 고라니는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산으로 돌아가고, 뒤이어 아내가 바가지에 과일껍질 등을 담아서 고라니가 있던 자리에 부어놓고 돌아오네. 겨울 내내 집 주위를 맴돌며 먹거리를 찾다가 아내의 눈에 띄어 오늘에 이른 것인데, 야생은 야생으로 있을 때 제대로 된 생이라고 내가 투덜거려도 아내는 막무가내고, 살금살금 아침안개가 걷히고 외딴집의 하루가 열린다.오늘은 밭 가장자리를 일구어 애기배추, 토란, 부추, 치커리, 근대, 아욱, 담뱃잎상추, 쑥갓, 고소, 열무 씨를 뿌리고, 모종을 구해다가 호박을 심고, 허리가 뻑뻑해질 쯤, 소반에다 김치부침개와 막걸리를 들고 밭을 가로질러오는 아내의 모습이 환하다.도시에서 바쁘게 살 때의 놓치거나 몰랐던 생각들이 땅을
농촌사는 이야기 | 육복수 | 2007-04-20 10:27
농촌사는 이야기 | 육복수<시인> | 2007-04-13 11:01